아이 귀지를 제거하는 것은 부모들이 흔히 하는 습관 중 하나입니다. ‘귀 안이 깨끗해야 건강하다’는 생각이 강해, 면봉이나 귀이개로 귀를 청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소아과와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거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합니다. 오히려 귀를 보호하는 중요한 방패이며, 인위적인 제거는 외이도 손상, 염증, 귀지 덩어리(이구전색) 등 다양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귀지의 생리학적 기능, 자연 청소 원리, 파는 것의 부작용, 그리고 안전한 관리 방법을 의학적 근거와 함께 자세히 살펴봅니다.
귀 건강을 지키는 귀지의 역할
귀지는 외이도의 피지선과 땀샘에서 분비된 물질, 피부 각질, 먼지가 혼합되어 만들어집니다. 이 작은 덩어리에는 의외로 많은 기능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 방어막 기능입니다. 끈적한 성질로 인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먼지, 세균, 곰팡이 포자를 붙잡아 고막과 청각기관을 보호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면역 체계가 미성숙하므로 귀지의 보호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둘째, 항균·항곰팡이 작용입니다. 귀지는 약산성(pH 약 6) 환경을 유지하여 병원성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합니다. 의학 연구에 따르면, 귀지가 부족한 아이는 외이도염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셋째, 습도 조절 기능입니다. 귀 내부가 너무 건조하면 가려움증이 심해지고, 반대로 너무 습하면 곰팡이 감염 위험이 커집니다. 귀지는 이러한 균형을 잡아주는 완충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귀지는 귀 속 깊이 쌓이지 않고, 턱관절 움직임(말하기·씹기)과 외이도의 피부 이동 속성 덕분에 점차 바깥으로 밀려나옵니다. 따라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제거하는 것은 귀의 자연 방어막을 일부러 허물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연 청소 기능의 과학적 원리
귀는 스스로 청소하는 능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신체 기관입니다. 이를 ‘외이도 자정 작용’이라고 부릅니다. 외이도의 피부는 고막 부근에서부터 귀 입구 방향으로 아주 느리게 이동하며, 이 과정에서 귀지가 서서히 바깥으로 나옵니다.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는 약 0.07mm로 매우 느리지만, 몇 주 또는 몇 달이면 입구 쪽으로 이동해 씻을 때 자연스럽게 제거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턱관절의 움직임입니다. 아이가 말을 하거나 음식을 씹을 때 턱관절이 움직이면서 외이도 피부에 미세한 파동을 일으켜 밀어내는 데 도움을 줍니다. 문제는 부모가 면봉이나 금속 귀이개로 귀지를 파면 이 자연 청소 과정이 방해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귀지가 깊숙이 밀려 들어가 ‘이구전색(earwax impaction)’이라는 질환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경우 귀 안이 막힌 느낌, 난청, 이명, 통증, 어지럼증이 나타나며, 심하면 병원에서 흡입기나 미세기구로 제거해야 합니다.
제거로 인한 부작용과 예방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귀지 제거는 다음과 같은 안좋은 작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 외이도염 – 면봉 끝이나 귀이개가 외이도 피부를 긁으면 미세한 상처가 생기고, 이곳에 세균이 번식해 염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고막 손상 – 깊이 넣은 귀이개가 고막을 찌르면 통증과 청력 손실이 발생하며, 심한 경우 고막이 천공될 수 있습니다.
- 귀지 결핍에 따른 감염 위험 증가 – 귀지가 너무 적으면 귀 안이 건조해지고 가려움증이 심해져 세균 감염 위험이 커집니다.
- 이구전색 – 귀지를 억지로 파내려다 오히려 귀 안쪽으로 밀어 넣어 단단한 귀지 덩어리가 형성되는 현상입니다.
예방 방법
- 귀 입구에 보이는 부분만 부드러운 면 수건이나 거즈로 닦아줍니다.
- 목욕 후 귀 주변 물기를 가볍게 제거하되, 귀 속 깊숙이 닦지 않습니다.
- 아이의 귀에서 통증, 가려움, 청력 저하가 나타나면 즉시 이비인후과를 방문합니다.
- 정기 검진 시 귀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전문의가 제거하도록 합니다.
귀지는 단순한 찌꺼기가 아니라 아이 귀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생리학적 요소입니다. 자연 청소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스스로 바깥으로 배출되므로, 불필요한 인위적 제거는 피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귀를 ‘깨끗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면봉을 사용하는 것은 실제로 귀 건강을 해칠 수 있으며, 귀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귀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귀의 자연 방어막이 잘 유지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만약 귀에서 냄새, 고름, 심한 가려움, 난청이 발생한다면, 가정에서 처리하지 말고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아이 귀 건강 관리의 핵심은 덜 손대는 것이며, 이것이 장기적으로 청력을 보호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